석박사/연구노트

지도교수님과의 한달반 간의 연구 미팅 기록

밍이의 꿈 2020. 8. 23. 23:13

7월초부터 지금까지 대략 한달하고도 절반의 시간동안 연구 미팅을 진행했다. 길지 않았던 시간이지만 지도교수님과 서로 연구 성향을 파악하고, 본격적인 연구 진행에 앞서 기반을 다지는데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본격적인 개강 전 워밍업 정도의 느낌이었지만 느낀 바도 많고 향후 일년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할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지도교수님의 티칭 스타일

입학 면접 당시 교수님께 지도 스타일은 어떠하신지 물었었다. 본인은 신뢰에 기반한 자유방임과 마이크로 매니지먼트 사이의 경계에서 적정한 균형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라며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말씀하셨다. 실제로 많이 신경쓰시는게 느껴졌다. 주제를 잡을때는 박사과정 학생의 중요한 능력이 문제를 스스로 찾는것이니 한번 주제를 찾아보라고 말씀하시고, 대신 어려움이 있다면 본인이 생각하고 있는 주제를 줄 수도 있다고 계속 강조하셨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큰 피드백을 줄때는 조금 더 내가 생각한 방향대로 끌고나가고 싶은지 본인이 지금 도움을 주기를 원하는지를 물어보시고는 내가 원할때만 피드백을 주셨다. 그 외에도 연구 윤리에 대한 생각,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기회들이 몇번 있었는데 인간적으로도 존경할만한 분이라는게 느껴졌다.  

영어 미팅의 어려움

영어 미팅 준비는 너무도 어렵다. 즉석에서 영어로 바로 설명할 수 있는 실력은 아니라 대본을 써서 외워가는 식으로 준비를 했는데 교수님의 돌발 질문에는 대응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두번째 미팅즈음 교수님의 질문이 쏟아졌는데 마침 내가 정확하게 알고 있지는 않은 부분이기도 했고 그러다보니 영어로 표현하기는 더더욱 어려워서 거의 단어를 던지는 식으로 말했다.. 거의 처음으로 내 밑천을 드러내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기는 했다. 한번 진땀을 빼고는 새로운 개념을 공부하는 즉시 영어로 설명해보는 식으로 공부를 시작했고 조금은 더 수월하게 돌발 질문에 대답할 수 있었다. 한국어로 할땐 몰라도 스리슬쩍 두루뭉술하게 둘러댈 수 있는데 영어로는 절대 안된다. 이러한 언어의 장벽이 오히려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말하는것만 문제가 아니라 듣고 이해하는것도 문제다. 혹시 놓치는 부분이 있을까 싶어 집중해서 듣고 이해 안되는건 몇번이고 pardon? sorry? 하고 물었다. 처음에는 계속 못알아듣는걸 티내는게 부담스러워서 알아듣는척을 했었는데 내 영어실력을 들킨 이후에는 그냥 철판깔고 계속 묻는식으로 전략을 바꿨다. 매주 미팅 직후 얘기나눴던 내용을 까먹지 않기 위해 삼십분에서 한시간정도 시간을 들여 미팅 내용을 정리했다. 교수님이 언급하셨던 것 중에 모르는건 구글링도 해보고 얘기 나눴던 내용들을 더듬어가면서 내 생각을 정리해보기도 하고 그랬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장벽을 극복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는데 결국에는 한국어 미팅보다 많이 남았다. 집중해서 듣고 복기도하니 시간이 조금 흘러도 대부분의 대화를 기억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한두시간 실컷 이야기 나누고 돌아서면 까먹었던 과거 나의 모습을 떠올리며 과거의 방식을 반성하게 되었다. 

매주 미팅의 압박과 성취

업무 방식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R markdown으로 데이터 분석결과를 정리함과 동시에 나중 라이팅 작업을 위해 떠오르는 좋은 문장들을 계속 기록해놓는게 좋을 것 같아 r을 시작했다. 통계 분석하기에는 파이썬보다 훨씬 좋고 그래프도 예쁘게 그려져서 예전부터 배워야겠다 벼르고 있었는데 드디어 시간을 들여 익숙해지는데 성공했다. 

매주 미팅을 하는건 생각보다 압박이 심했다. 매주 월요일 미팅이라 주말에는 부담이 되어 못쉬고 미팅자료를 계속 보완했다. 월요일 밤에 미팅이 끝나면 화요일 하루 생각없이 놀고 수요일부터 다시 달리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그런 압박 때문일까 한달이 채 안되는 시간동안 데이터 수집 및 전처리를 끝내고 간단한 모델을 적용한 결과를 뽑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의 내 연구 진행 속도 중에서는 가장 빨랐다. 여전히 갈길이 멀고 이 연구가 잘 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시작이 좋다. 

r 로 그린 그래프가 문서에 바로 첨부되어 깔끔하게 분석 내용을 정리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의미 있는 변화가 있다면 새로운 방법론을 배울 때 수식이랑 원리를 조금 더 세밀하게 보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매번 원리를 캐물으시고 수식을 보여달라, 내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달라 하시는 교수님 덕분이다. ㅎㅎ

수식도 이렇게 깔끔하게 들어간다. 

Work and life balance

나는 '몰입'의 순간을 정말 좋아한다. 몰입을 경험할때마다 엄청난 희열을 느끼는데 그 순간은 이번 한달반만 보더라도 내가 원하는것 만큼 자주 찾아와주지 않았다. 결국 이것도 훈련이라고 생각해 이런저런 방식을 시도해봤다. 지금까지 찾아낸 규칙들은 다음과 같다. 1) 아침 공부 전 간단히 챙겨먹고 스트레칭하기, 일어나자마자 바로 공부하기보단 머리 깨우는 시간 가지기 2) 4시간 이상은 연속으로 앉아있지 말기, 집중이 안된다는걸 깨닫는 순간 붙들고 있지말고 바로 쉬러가기 3) 너무 힘들어서 쉴땐 한시간 이상 확실히 쉬기 4)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규칙적인 운동은 최우선 순위로 두기. 추가로 요즘은 명상에도 관심이 생겨서 시도하고 있다. 템플스테이도 갔다왔다. 거기서 배운 손 명상, 삼토식, 명상 이후 다시 몸을 깨우는 방법들을 유용하게 적용해보려고 한다. 

그냥 자리에 오래 앉아있고 공부에 시간을 많이 쓰는건 오히려 정말 쉬운데 그 시간동안 실질적인 아웃풋을 만들어내는건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언제든 최상의 컨디션으로 연구하기 위해서는 하루 내에, 일주일 내에, 또 한달 내에 적절한 휴식과 기분전환될 이벤트를 현명하게 배치하는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많이 느끼고 있고 계속 시도해서 최적을 찾아나갈 생각이다. 

달리기 전, 어디로 달려야할지 방향성 찾기

연구를 하다보면 굉장히 지엽적인 문제에 매몰되어 한참을 파고 들어가다가 한참 후에야 앗, 하고 이 부분이 별로 중요하지 않았음을 깨닫는 순간들이 있다. 한참을 매진했던 연구의 방향성이 통째로 바뀌기도 한다. 이번 한달반 동안 매진했던 주제는 사실 내가 원래 박사 과정동안 다루려고 했던 주제가 아니라서 나에게는 일종의 사이드 프로젝트이다. 이것도 내가 앞으로 시간분배를 잘못하면 내 졸업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나에게 이 프로젝트가 갖는 의미에 대한 고민을 시작으로, 과연 나는 몇년만에 박사를 졸업할 수 있을지, 박사 동안 논문을 몇편 쓸것이며 어떤 주제들을 다룰지, 박사 논문 주제는 그 중 어떤것에 초점을 맞출지, 졸업 이후에는 industry로 갈지 학계에 남을지 많은 고민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너무 일찍부터 고민을 시작했나 싶기도 했지만 결국은 일찍이 시작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석사 지도 교수님과 주변 유학 선배들에게 여러 조언들을 듣고 나의 고민에 대한 답을 어떻게 얻어 나갈지 알 수 있었다. 결국 박사 졸업을 빨리 할 수 있냐는건 1) 학교에서 요구하는 실적을 채웠고 2) 졸업 이후의 진로가 명확해 빨리 졸업해야할 명분이 있으며 3) 나만의 philosophy를 가지고 박사 논문을 써낼 수 있는지 인것 같다. 내 분야의 큰 동향을 관찰하고, 그 흐름속에서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찾고, 진로 계획에 딱맞는 주제를 잡아서 연구를 진행하는게 졸업까지의 여정을 돌아돌아 가지 않고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지름길인 것 같다. 지름길로 가려면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계속 고민해야하고 그런 고민을 하기 위해서는 여유가 있어야한다. 매 학기, 매주, 매일, 바쁜 일상에서 한발짝 물러서서 내가 제대로 가고있는지 점검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너무 작은 부분에 매몰되지 않고 주기적으로 큰 그림을 보려는 습관을 들이는것, 너무 먼 길을 가버리기 전에 한번쯤 멈춰서서 방향을 살펴볼 수 있는 여유를 갖추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다짐해본다.